얼마 전 국내의 한 락 페스티벌에서 라디오헤드가 공연을 해서 큰 화제가 되었다. 그만큼 그들을 열렬히 바라는 팬들이 지구 반대편에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 책 “라디오 헤드로 철학하기”는 라디오헤드를 대중문화 아이콘 뿐이 아닌, 철학적인 현미경과 망원경을 통해 바라보는 위험하면서도 담대하고 발칙한 시도의 책이다. 16명이 공동 저술했다고 해서, 일종의 ‘오타쿠’ 팬덤 현상이 아닐까 싶었으나… 이거 웬걸, 저자 하나하나가 철학, 문학, 음악적 내공을 지닌 사람들이다. |
음악가는 철학자이며, 철학자는 록커이다.
지금은 트위터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그러나 한 때는 대한민국을 주름 잡았던 서강대 철학과 출신의 한 중년 락커가 오래 전에 말한 적이 있다.
“비트겐슈타인(영국의 철학자)을 읽고 ‘이 사람은 로커다’ 하고 생각했어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사적 위상이 어떻고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과 전공의 락커가 ‘철학자는 락커다’라고 말했다면, 그와 반대로 ‘락커는 철학자다’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논리적으로 반드시 성립하는 문장은 아니지만).
그러니까,
“라디오헤드는 철학자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 이 책의 요지이다.
이 책은 흥미로운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비틀즈와 핑크 플로이드를 끼워 넣은 채 대중음악의 철학적 위상에 대해 논하고자 하는 기본 밑밥을 깔고 있다. 그리고 2장에선 본색을 드러내서 라디오헤드의 음악이 청중들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 가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에서부터 영화 매트리스를 통해 널리 알려진 ‘시뮬라르크’에 걸쳐 설명한다. 3장에선 외부로 시선을 넓혀 라디오헤드의 음악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이 환경보호와 음악산업 혁신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4장은 마치 2장과 3장의 정-반-합이라도 되는 것처럼, 라디오헤드의 음악적 사상이 외부 환경인 현실 정치 현실과 어떻게 맞닿아 있고 이를 어떻게 비판하는지를 논한다. 마지막 5장은 탈 해체를 특징으로 삼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와 라디오헤드가 얼마나 잘 부합하는가를 고찰한다.
책을 읽기 전 내가 라디오헤드에 대해서 아는 것은 딱 두 가지였다.
하나, 수많은 청춘의 가슴에 불을 지른 ‘Creep’이라는 노래. 사실 라디오헤드를 안지는 오래되었고 주변에 많은 광 팬이 있었지만 관심이 없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우울하면서도 불쾌하게 만드는 라디오헤드를 듣는 이유는 ‘동정심과 두려움이라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해서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겠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싫어했던 것이다. ‘왜 이렇게 우울하기 짝이 없는 음악을 들어야 하나?’ 그래서 책 전반에 걸쳐 논하는 라디오헤드 음악의 철학적 의미에 대해서는 사실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이 내게 흥미로웠던 것은 내가 유일하게 라디오헤드에 관해서 알고 있는 두 번째 사실 때문이었다. 3장에서 음반사라는 중간 매개체가 자본의 힘을 바탕으로 어떻게 음악(혹은 문화)산업의 중심에 자리잡고 음악가와 소비자 양측으로부터 폭리를 취해 왔으며, 라디오헤드가 이를 어떻게 때려 부쉈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이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다. 즉, 2007년 음반 산업을 뒤흔든 ‘In Rainbow’ 앨범의 ‘니 맘대로 가격을 내렴’ (Pay-what-you-want) 판매 전략이야말로 혁신을 가져온 ‘봉기’였다는 것이다. (관련된 오래된 포스팅 하나 http://eugenepark.tistory.com/144)
라디오헤드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그들의 목소리를 ‘읽어도 될까?’
라디오헤드를 몰라도 철학과 미학의 관점에서 대중문화 코드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임마뉴엘 칸트의 ‘현상학’적 관점에 따르자면 라디오헤드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서서히 쌓이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급진적으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 또 누가 알겠는가? 제목의 ‘쿨’함에 끌려 책을 잡았지만, 어느 새 틈만 나면 High and Day와 My iron Lung,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 등을 듣고 있는 나처럼 될지?
물론 지산 락페까지 달려간 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라디오헤드의 팬이라면 읽어 봄직한 책이 아닐까 싶다. 자기가 좋아하는 밴드를 둘러싼 이면에 담긴 의미까지 알려주는 가이드북이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지면서 부러운 일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