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차이나 / 류쥔뤄 지음, 김선우 옮김 / 한빛비즈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 적어도 한국 내에서 –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중국이 사회, 문화, 인프라 등 여러 방면에서 큰 문제를 안고 있어서 결코 강대국이 될 수 없다는 냉소 또는 (악의적인) 희망이다. 또 다른 시각은 중국이 미국을 넘어 세계를 제패할 국가로 성장할 것이라는 두려움 또는 (긍정적인) 희망이다. 둘 중에 어떤 시각이 결과적으로 옳을지는 현 시점에서 쉽게 예측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은 전자의 시각을 취함으로써 후자의 결론을 이끌어내려는 책이다.
이 책은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처럼 양면적이고 복합적인 이야기를 끊임 없이 진술하고 있다. 중국 내외부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던 중국의 장점이 사실은 허상에 불과하며 오히려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진단을 통해, 중국의 위기를 경고하는 것이 책의 주된 흐름이다. <블랙 차이나>의 원제인 <中国经济大萧条还有多远>는 - 우리 말로 하면 '중국의 경제위기는 머지 않아 닥친다' (출판사 후기 참조) – 책의 이러한 관점을 직설적으로 요약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이 직면한 위기의 실상에는 G2의 반대편 축을 차지하는 미국이라는 현 패권 국가의 전략적이고 의도적인 노림수가 숨어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자본주의라는 첨단 금융 시스템을 무기 삼아 중국을 ‘현금 인출기’로 만들고자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달러의 문제, 자원의 문제, 지식산업의 문제 등 많은 사례를 들면서 중국의 이러한 이면적 위기를 폭로하는 이유는, 단지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시각에서가 아니라 중국이 미국을 능가하는 패권국가가 되기 바라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중국이 위기를 직시하고 이를 개선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중국식 사상’이 ‘아메리칸 마인드’를 능가하여 세계 최강대국으로 우뚝 서길 바라는 애정 어린 마음으로 환부에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
중국의 현실은 무엇인가?
2012년 2분기, 중국의 국내총생산(GDP)는 2011년 2분기 대비 7.6% 성장에 그쳤다는 것이 크게 기사화되었다. 중국의 GDP 성장률이 8% 이하를 기록한 것이 3년 만의 일이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향후 전망도 그다지 밝지 않다는 점이다. 유럽을 휩쓰는 재정 위기와 미국의 경기 침체가 맞물려 중국 경제가 성장동력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위기가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나비효과를 살펴보자.
많은 이들은 중국을 세계의 공장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이는 결코 좋은 수식어가 아니다. 미국이 2001년 이후 자국 내 제조업을 해외로 이전시키는 대신 기술 혁신을 통해 더욱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된 반면, 정작 중국은 저 부가가치의 가공무역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폰 뒷면에서 새겨진 “Designed in California, Assembled in China”라는 문구는 美(애플)과 中(폭스콘)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문제는 세계의 공장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수요를 훨씬 능가하는 악성 과잉 생산 단계에 접어들어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생산은 폭증하는 데 비해서, 눈 높이가 높아진 자국 내 소비자는 오히려 수입품을 찾기 시작하여 수요와 공급의 괴리가 점점 커지게 되었다. (멜라민 분유 파동 이후 고급 분유 수입이 증가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제는 임금 인상률이 성장률보다 더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하자, 해외 업체들은 동남아나 인도로 생산 기지를 이전하면서 공동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장’이라는 물리적 자산이 필요한 제조업은 매몰비용(Sunken Cost)이 존재하기 때문에 금융 자본과 달리 쉽사리 이동이 불가능하여 문을 닫은 채 버려지게 되어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세계의 공장’이 직면한 현실이다.
그런데, 그 버려진 공장은 어디에 위치하는가? 공업화 초기 붐을 틈탄 부동산 열풍에 힘입어 중국 전역에 걸쳐 개발된 농업 지대가 바로 그 버려진 공장터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중국인들에게 음식과 식수와 목화를 제공하던 비옥한 땅이 엎어지고, 공장과 아파트와 인프라 시설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땅은 난개발 폭풍이 지나간 뒤 버려진 땅이 되어버렸다. 이제 중국인들은 경기 침체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식량을 수입하고, 식수난을 겪고, 부동산 버블이 터지는 것을 걱정하면서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복합적인 진단이다.
이런 복잡하고 비관적인 현실 속에서 중국은 어떤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인가?
저자는 GDP로 대변되는 성장형 정책은 더 이상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가계, 기업, 지방정부가 상환 능력을 초과하여 부동산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GDP가 상승해왔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지나치게 부풀려진 인플레이션에 대한 관리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21세기 경쟁 환경에 걸 맞는 인재를 양성해야 하며, 두뇌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중국이 액면 그대로의 전통적인 물리적 도서관에 집착하는 동안, 미국은 유무선 네트워크를 통해서 디지털 정보를 더 쉽고 빠르게 획득하게 되었다면서 중국 전체의 각성이 필요하다는 따끔한 충고와 함께 마무리한다.
책을 덮으며
비록 이 책은 중국의 위기에 대해 경고하고 있지만, 위기의 본질은 우리에게도 상당수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청년 실업으로 인해 희망을 잃어가고, 사교육비에 걱정하는 청장년층과, 주택담보대출에 힘겨워하는 베이비부머가 경제 전반에 걸쳐 큰 위협으로 다가오는 위기는 <블랙차이나>에서의 복합적인 경고가 결코 남의 이야기만으로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대중 무역흑자가 대미 무역흑자보다 7배 이상인 오늘날,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의 붕괴는 우리에게는 당사자보다 더욱 아프게 다가올 지도 모른다. 초연결(Hyper-connected) 시대에 우리 이웃의 어두운 현실을 아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을 알아가는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인상 깊은 문구를 인용하는 것으로 이 책에 대한 감상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있는 것이다. 남이 눈앞의 위기를 못 알아보는 것을 비웃으면서 정작 우리 눈앞에 다가온 위기는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P.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