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인문학과 거리가 먼 편이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인문학이 싫다. 그건 마치 플레밍의 법칙 대신 락커인 마냥 손가락으로 peace를 그리던 시절에 가지고 있던 물리학에 대한 감정과 유사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정작 학생 때는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가 전부 경제학과 경영학에서 나오는 줄만 알았었는데 머리가 조금 굵어지고 사회에 나와보니 전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깨달음이 있다고 해서 정작 인간의 존재 이유, 사유의 방식, 심리적 동기 등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동안 경시해왔던 인간자체에 대한 경외감이 깊고 또 깊어지면서 예전보다 더 멀어지고 더 어려워졌다는 게 사실이리라.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인문학이 싫다. 마치 존 앰브로즈 플레밍 경(Sir)을 이해하려고 들면 들수록 정작 더 싫어졌던 것처럼.

  

그런데, 정말 인문학이란 무엇일까? 보르헤스를 말하고, 라깡을 말하고, 아도르노를 말하는 것인가? 이런 사람들이 떼거지로 등장하기 때문에 플레밍 경과 동급으로 취급한 것인 것이었을까?

 

 


모든 순간의 인문학

저자
한귀은 지음
출판사
한빛비즈 | 2013-05-10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인문감성으로 허무한 일상의 가치를 되찾다!인문학이 빛을 발하는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여기 한 국문학 교수이자 스스로 인문학 과격주의자라고 칭하는 40아줌마가 있다. 주로 하는 일이라고는 최백호부터 장기하까지 노래를 들으며 센치한 감상에 빠지거나, <연애시대>부터 <신사의 품격>까지 드라마를 청승 맞게 본방사수하는 게 특기이다. 어디 그 뿐이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부터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에 이르기까지 책을 논하고, <러브 액츄얼리> 부터 <은교>까지 다양한 영화에 대한 을 푼다.

 

 

 

소소한 일상에 숨겨진 인문감성

 

온갖 수많은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이처럼 문어발, 백화점 식의 소재로 논하고자 하는 목적은 결국 단 한 가지 인문감성을 채우고자 함이다. 소소하게 지나가는, 돌이켜 곱씹어 봐야지만 그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미묘한 순간들. 그 순간 순간 속에서 나를 나답게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은 인문감성뿐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자 이 책의 목표이다.

 

인문감성이란 마치 이런 순간을 뜻할 것이다. 내 애인의 스마트폰에 어떤 앱이 깔려 있는지에는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을지언정, ‘가장 최근에 재생한 노래또는 가장 많이 재생한 노래가 무엇인지는 모르는 사람에게는 결핍된 그 것말이다 

[500일의] 썸머가 책을 읽고 있는데 그 책의 제목을 물은 남자였다. 참으로 별것도 아닌 희한한 일로 결혼까지 한다고 생각할 줄 모르겠지만 사실 우리는 자기 애인이 읽고 있는 책이 어떤 책인지를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다.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을 물어보는 일은 대단한 사건인 것이다(p. 214)

 그러니, 일상에서의 사소한 의미부터 재발견하는 작업을 시작하라고 주장한다.

 

 

공주의 망상이 진실로 빛나는 때 

사랑이 사유로 반짝이는 순간

나에게서 낯선 행복을 발견하는 순간

고독이 명랑해지는 순간

상처가 이야기로 피어나는 순간

우리가 기꺼이 환대할 순간 

5개 챕터의 제목들이다. 제목을 처음 보는 순간 소녀 또는 공주스럽다…’ 내지는 낙관주의 혹은 망상주의자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저자 한귀은 교수는 솔직하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를 놓치지 않는다. 그것이야 말로 자기 자신을 찾는 첫번째 단계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애인에게] 거짓말을 할 수도 없다. 거짓말을 하면 결국 자기 자신이 속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했을 경우, 내 애인이 사랑하는 사람은 나 자산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다(p. 87)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비록 겉으로는 잘 드러나 있지 않지만, 여성을 위한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40대 아줌마 선배가 20대와 30대 후배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시각을 풀어서 설명해주는 느낌이랄까? 보편적 감성으로서 남성에게도 쉽게 받아들여지는 부분도 있는 반면, 일부 글에서는 약간 망설여지고 머뭇거려지는 순간도 분명 존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 명의 남성 독자로서는 조금 아쉽다고 해야 할까?

 

마지막으로 이 책의 진실된 단점 중 하나를 꼽자면, 짧은 감상과 치유는 될 수 있어도 그 울림의 소리가 내면에 오래 머물러 있지는 못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대중문화를 통해 가볍게 풀어나가고자 했던 이 책의 장점이 동시에 단점이 되버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게 스쳐가는 모든 순간 속에서 새로운 감성을 느끼고 자기 자신에게 충만하고 싶다면 일독해볼만한 책이다.

 

Posted by OI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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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훈민

저자 김훈민은 KDI 연구원으로 중앙대 경제학과와 대학원 경제학 석사를 졸업하였다. 소문난 독서광으로 유명하며, 소장하고 있는 개인 장서가 2만권이 넘는다. 특히 경제학 분야 서적에 있어서 개인으로는 본인이 가장 많은 경제학 서적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일 것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며, 머지않아 KDI 도서관보다 본인이 소장한 도서가 많아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읽고 쓰는 활동에 관심이 많아 현재 KDI, 한국경제신문, MBN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저자 : 박정호

저자 박정호는 KDI 전문연구원으로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KAIST에서 경영학 석사를 그리고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다. 하지만 학위 콜렉터라는 말을 가장 싫어하며,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 모두 필요한 것들이라 주장하고 있다. 평소배워서 주자!”라는 신조를 갖고 있어 EBS, 금융투자협회, 라디오 다양한 매체를 통해 금융소외계층 등을 위한 강의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한국경제신문, 사이언스 타임스 등에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집안에는 후대들에게 경제학을 강의하는, 소위 경제학자가 네 분이 계시다. 그래서였을까? 대학에 막 입학했을 때, 난 절대로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을거야. 라는 어줍잖은 반항심에 경영학을 택했고 경제학은 최소한의 필수만을 듣고 무사히 대학 졸업장을 거머쥘 수 있었다. 그러나, 좀 더 공부를 하고자 했을 때,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 여러 가지 당면한 현실 이슈를 접했을 때 나는 경제학 공부를 소홀히 한 것을 후회한 상황이 여러 번 있었다. 사회과학적으로 진지한 접근을 할 때 경제학은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었고, 현실 속에서 부딪히는 수 많은 이슈도 사실은 경영학에서 다루는 피상적인 접근보다 경제학을 통해서 설명할 수 있는 비록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이라는 지극히 제한적인 단서를 달고 있지만 경우가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이는 경제학이 하나의 학문으로서도 훌륭한 많은 제약조건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인문 사회 내에서는 손꼽히는 체계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굳이 학문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달지 않더라도 우리네 삶 속에는 매일매일 경제적인 의사결정이 알게 모르게 녹아 들어 있음을 의미한다. 수요와 공급 속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결정하는 가격 체계, 자원의 희소성 속에서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결정 등은 누가 딱히 가르치지 않더라도 인간의 역사 속에서 실천되고 발전되어 온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경제학적인사고는 곧 人間 또는 人文과 불가분의 관계로 존재해 왔던 것이다.

 
두 명의 KDI 연구원들이 내 놓은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는 그래서 흥미롭게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두 저자는 신화와 설화에서 출발하여, 역사를 거쳐, 문학, 예술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어 온 필부필녀 혹은 황제의 선택과 의사결정 속에 본인이 인지하건 못하건 녹아 들어 있는 다양한 경제학적 개념을 설명해주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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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거품 사건 또는 책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튤립 투기 광풍 사건 등은 오늘날에도 또 다시 반복되는 광기와 패닉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역사 속에서, 하나의 경제인으로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 역사 속에서 귀감이 되는 사건이 많다라는 저자들의 말은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문학과 예술 속에도 경제 논리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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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들만의 독특한 해석도 있는 것 같고, 이미 경제학계에서 많이 논의 되어온 해석에 대한 단순 소개도 존재하지만 특히 어릴 적 동화로만 기억하고 있었던 <Oz의 마법사> 같은 경우에는 무척 흥미로운 소개가 되었다.

 또한 개인적으로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들은 지적인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 혁명은 분식회계로 인해 촉발되었다(p.88)’ 라던지, Peter Wiles가 소련 계획 경제를 두고 Perfect computation 이라는 용어를 제시했다는 점이던지(p.131), Edward Bellamy라는 작가가 유토피아를 그린 <뒤를 돌아보면서(1888)>라는 소설을 출간했고 큰 인기를 끌었다는 이야기들은 개인적으로 관련되어 더 찾아보고 싶은 마음을 들게 했다.

 

 그러나, 기존의 텍스트를 경제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자의성이라는 함정에 빠질 위험도 있다.

<몽테크리스토 백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등 문학작품 속에서 드러난 경제 현상은 작품들을 안 읽어본 사람들에게는 친절한 해설이자 새로운 경제적 지식을 알려주는 일석 이조의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 해설에 동의하지 않거나 해설이 억지스러울 경우에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 편에서 ‘<크리스티나의 세계>와 제한된 합리성의 경우 최근 경제학계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행동 경제학과 제한된 합리성에 대해서 설명은 꼭 해야겠으나 마땅한 사례를 찾지 못해서 억지로 붙인 게 아닌가 싶다. 심지어 마무리 부분에서는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그 어색함이 극도로 드러났다.

특히 마지막 챕터는 무의미하지 않나 싶다. 철학적인 인간과 경제학적인 인간. 인문 또는 철학이 경제학과 괴리되어 있지 않다라는 사실은 책 전체를 통해서 전달해 왔는데, 굳이 별도의 챕터를 통해서 이를 다시 넣는 것은 뭔가 억지스런 에피소드들이 아닌가 싶다. 경제학자의 윤리 강령이라던지, 유대인의 세계경제 지배력과 같은 이슈가 본 책의 큰 주제와는 크게 관계가 없지 않나?

 
 
저자들은 감세, 부동산 정책, 최저임금제 등 현실에서 첨예한 논쟁이 일고 있는 분야에 대해 인문학적 텍스트를 통해서 혹은 대가들의 입을 빌려서 논지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 중립성을 지키는 듯하면서 넌지시 본인들의 생각을 전하는 방식은 저자들이 KDI 소속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불가피하면서도 현명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장점이자 아쉬운 점은, 일종의 퀴즈이자 기억력 테스트를 해 나가는 방식이 좀 더 일관적이었으면 좋았을 법했다. 경제학의 개념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고 있던 나로서는, 각각의 서론 인문학에서 나타나는 사례 를 읽으면서, ‘아 이번 절은 OOO에 관한 이야기이겠구나라고 추측하는 지적 유희를 즐기고 싶어 했는데 이러한 구성 방식이 일관적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다소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본문 중간 중간에 언급되는 주요한 참고문헌 원문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알려주거나 최소한 관련된 (경제학자) 인물의 Full name을 언급했더라면 추가적인 학습에 도움이 되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점도 아쉽게 느껴진다.

 
 
몇 년 사이에 인문학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시를 읽거나 그림을 읽거나 역사를 알지 않으면 마치 CEO가 될 수 없는 것 같은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경영이라는 기업인의 본업조차도 못하면서 타 분야를 접목시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비즈니스라는 것이 결국 인간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인문학의 중요성이 다소 과장되었을지언정 허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최근 학계에서 또는 산업계에서 중요한 화두로 제기되고 있는 융합 또는 통섭에 관해 의미 있는 접근법을 제시해준다. --합을 통해서 새로운 개념을 도출하는데 까지는 부족했지만, 적어도 전혀 다른 분야에서의 사례를 접목하여 경제학이라는 분야를 넓히고자 하는 시도에서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몇 년 전 미디어 경제학이라는 이름 하에 한국언론학회가 주최한 세미나에 간 적이 있다. 소위 언론학자라 불리우는 주요 대학 교수님들이 모여 앉아서 경제학 전공한 사람들이 미디어에 대해서 뭘 안다고 미디어 경제학을 연구하나라는게 그 학회의 핵심 화두 중 하나였다. 그 분들께 여쭙고 싶었다. 본인들은 경제학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기에 미디어 경제학을 연구하십니까 라고. 융합은 어렵지 않으면서도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분야에 대한 기득권을 내려놓고 다른 분야를 수용할 수 있는 자세가 융합의 처음이자 끝이 아닐까 싶다. 이미 출판계에는 이러한 시도의 책이 종종 나오고 있는데, 다양한 주제를 담은 시리즈가 계속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P.S. 크리스 앤더슨이 쓴 <Longtail>은 블로그를 통해 저자가 화두를 던지고 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계속 사례를 발굴하고 살을 붙여 나가 책이라는 형태로 나올 수 있었다. 비단 <Longtail>뿐이 아니라 최근 미국에서 출간된 여러 서적들이 이런 인터랙티브 방식으로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이라는 좁은 시장 내에서, 적극적인 웹 참여 문화가 아직 발전기에 놓인 상태에서 이런 식의 출간은 지나친 욕심일까?  
이 책에서 제시된 모든 개념들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들 + 누락된 개념들 중에서 중요한 것들을 선정해서 <네티즌의 경제학 서재(가제)>와 같은 책을 만들면 어떨까? 영화를 주제로만 해도 무수히 많은 사례가 나올 수 있있을텐데. ‘Dark Knight’에서의  게임 이론, ‘철의 여인에서 드러난 영국의 경제위기 등등


Posted by OI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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