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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원칙: 생각하고 느낀 것을 당당하게 말하라제 2원칙: 경청하라제 3원칙: 친절하라제 4원칙: 열정과 에너지를 가지고 말하라제 5원칙: 다른 사람을 인정하라제 6원칙: 좋은 질문을 하라제 7원칙: 평등하라제 8원칙: 당신의 이야기를 하라제 9원칙: 거침없이 웃어라제 10원칙: 삶을 모험이라고 느껴라제 11원칙: 자유롭게 말하라
난 인문학과 거리가 먼 편이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인문학이 싫다. 그건 마치 플레밍의 법칙 대신 락커인 마냥 손가락으로 peace를 그리던 시절에 가지고 있던 물리학에 대한 감정과 유사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정작 학생 때는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가 전부 경제학과 경영학에서 나오는 줄만 알았었는데 머리가 조금 굵어지고 사회에 나와보니 전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깨달음이 있다고 해서 정작 인간의 존재 이유, 사유의 방식, 심리적 동기 등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동안 경시해왔던 ‘인간’ 자체에 대한 경외감이 깊고 또 깊어지면서 예전보다 더 멀어지고 더 어려워졌다는 게 사실이리라.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인문학이 싫다. 마치 존 앰브로즈 플레밍 경(Sir)을 이해하려고 들면 들수록 정작 더 싫어졌던 것처럼.
그런데, 정말 인문학이란 무엇일까? 보르헤스를 말하고, 라깡을 말하고, 아도르노를 말하는 것인가? 이런 사람들이 떼거지로 등장하기 때문에 플레밍 경과 동급으로 취급한 것인 것이었을까?
여기 한 국문학 교수이자 스스로 ‘인문학 과격주의자’라고 칭하는 40대 ‘아줌마’가 있다. 주로 하는 일이라고는 최백호부터 장기하까지 노래를 들으며 센치한 감상에 빠지거나, <연애시대>부터 <신사의 품격>까지 드라마를 청승 맞게 본방사수하는 게 특기이다. 어디 그 뿐이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부터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에 이르기까지 책을 논하고, <러브 액츄얼리> 부터 <은교>까지 다양한 영화에 대한 ‘썰’을 푼다.
소소한 일상에 숨겨진 인문감성
온갖 수많은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이처럼 문어발, 백화점 식의 소재로 논하고자 하는 목적은 결국 단 한 가지 ‘인문감성’을 채우고자 함이다. 소소하게 지나가는, 돌이켜 곱씹어 봐야지만 그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미묘한 순간들. 그 순간 순간 속에서 ‘나를 나답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은 인문감성뿐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자 이 책의 목표이다.
인문감성이란 마치 이런 순간을 뜻할 것이다. 내 애인의 스마트폰에 어떤 앱이 깔려 있는지에는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을지언정, ‘가장 최근에 재생한 노래’ 또는 ‘가장 많이 재생한 노래’가 무엇인지는 모르는 사람에게는 결핍된 그 것말이다.
[500일의] 썸머가 책을 읽고 있는데 그 책의 제목을 물은 남자였다. 참으로 별것도 아닌 희한한 일로 결혼까지 한다고 생각할 줄 모르겠지만 사실 우리는 자기 애인이 읽고 있는 책이 어떤 책인지를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다.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을 물어보는 일은 대단한 사건인 것이다(p. 214)
그러니, 일상에서의 사소한 의미부터 재발견하는 작업을 시작하라고 주장한다.
공주의 망상이 진실로 빛나는 때
사랑이 사유로 반짝이는 순간
나에게서 낯선 행복을 발견하는 순간
고독이 명랑해지는 순간
상처가 이야기로 피어나는 순간
우리가 기꺼이 환대할 순간
5개 챕터의 제목들이다. 제목을 처음 보는 순간 ‘소녀 또는 공주스럽다…’ 내지는 ‘낙관주의 혹은 망상주의자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저자 한귀은 교수는 솔직하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를 놓치지 않는다. 그것이야 말로 자기 자신을 찾는 첫번째 단계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애인에게] 거짓말을 할 수도 없다. 거짓말을 하면 결국 자기 자신이 속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했을 경우, 내 애인이 사랑하는 사람은 나 자산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다(p. 87)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비록 겉으로는 잘 드러나 있지 않지만, 여성을 위한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40대 아줌마 선배가 20대와 30대 후배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시각을 풀어서 설명해주는 느낌이랄까? 보편적 감성으로서 남성에게도 쉽게 받아들여지는 부분도 있는 반면, 일부 글에서는 약간 망설여지고 머뭇거려지는 순간도 분명 존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 명의 남성 독자로서는 조금 아쉽다고 해야 할까?
마지막으로 이 책의 진실된 단점 중 하나를 꼽자면, 짧은 감상과 치유는 될 수 있어도 그 울림의 소리가 내면에 오래 머물러 있지는 못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대중문화를 통해 가볍게 풀어나가고자 했던 이 책의 장점이 동시에 단점이 되버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게 스쳐가는 모든 순간 속에서 새로운 감성을 느끼고 자기 자신에게 충만하고 싶다면 일독해볼만한 책이다.
독일에 대해서 아는 것은 많지 않지만,
역사적으로 많은 철학자를 배출했고 이성과 합리성의 전통이 흐르는 나라라는 정도는 어디서 주워들은 것 같다.
거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최근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엄밀히는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 등 미국 회사를 중심으로,
스마트 혁명의 광풍이 전세계로 확산되는 가운데에서 독일은 그에 반하는 反 운동도 제법 나오고 있는 것 같다.
<디지털 치매>라던지, <달콤한 로그아웃> 으로 살아가던지 등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우리에게 주는 폐해를 다룬 책이 독일 국적의 저자로부터 종종 쏟아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 <난 단지 토스터를 원했을 뿐>도 그 연장선상에 놓인, ANTI-기술에 관한 책이다.
그런데, 어지간한 인터넷 유머보다, 댓글보다, (어처구니 없는) 네이버 뉴스보다 더 웃기다, 이 책은.
저널리스트 및 작가 경력의 저자는 본인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현대 기술 문명을 새까만 블랙 코미디로 재포장하고 있다.
기술은 매일마다 진화하고 있다.
IT 뉴스를 1개월만 보지 않아도 당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 어려울 정도다.
저자는 반문한다.
"왜 기계들이나 설비 기구들은 원래 있었던 그대로 단순하게 남아 있지를 못할까? 최소한 30년 전 것들만이라도 좀 그대로 있으면 안되나? 무엇이든 최신화하려는 현대의 기계 산업은 최신화의 선동자가 되어 버린 것만 같다."
그리고 저자는 그 이유에 대한 답도 알고 있다. 이렇게 자꾸 신제품이 공급과잉 상태임에도 꾸준히 시장에 출시되어야
"어쨌든 경기가 돌아가고, 경제 전문 잡지나 사용 설명서를 찍어내는 출판사들도 일거리가 생기게"되니까라고 진단하고 있다.
냉장고, 세탁기, 네비게이션, 스마트폰, 컴퓨터 등 저자는 주변의 수많은 IT제품을 하나하나 다 "까고" 있다.
별로 나아진 것도 없으면서 오히려 불편해진 주제에 '첨단'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본질은 파악하지 못한 채 '쿨'하다는 이유로 첨단 기기와 서비스에 열광하는 현대인들을 동정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오죽하면, 석기시대인이 현대인보다 나았다는 비교를 할까?
요지는 그렇다.
석기시대인은 비록 30살까지밖에 못 살았지만 하루에 12시간의 자유시간이 있었기에 10~30살까지 20년 동안 평생 8만 7,600시간의 자유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 잘난 유럽인들의 경우(미국인은 더 심할 것이며, 한국인은 더 더 심할 것이라 확신한다)
하루에 고작 한 시간의 자유 시간만이 있으며, 10~78살까지 68년간의 총 자유시간은 고작 2만 4,820시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즉 "현대인들은 석기시대인들의 시간보다 무려 3분의 1이나 줄어든 시간밖에 쓰지 못한다."라고 애통해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까워 하지들 마시라.
책을 읽을 시간조차 없는 바쁜 현대인들을 위해 친절한 저자는 4줄 요약으로 책을 끝맺었다.
· 기술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 계속 새로운 무언가가 등장하고 있고, 주변 환경들도 변하고 있다.
· 기본적으로 석기시대가 모든 면에서 훨씬 좋았다.
· 사람들은 늘 작동되지 않는 기기들 때문에 속을 끓이며 산다.
물론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깔깔깔 웃어가면서 들어보고 싶은 사람들은 기꺼이 소중한 자유시간(+돈)을 이 책에 투자할 만 하다.
패션, 요리, 코미디, (미식)축구의 공통점은?
결론의 제목을 빌려 말하자면 “베끼기를 통한 혁신”이 있는 분야이다.
책에는 서로 상충되지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두 가지 개념이 소개된다.
1. 혁신의 독점 이론: 창작자들에게 복제 권리나 라이선스를 판매할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창작자를 보호해야 혁신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난다는 주장.
2. 베끼기의 역설: 경우에 따라 오히려 베끼기가 창작 활동을 촉진하는 경우.
이 책은 혁신의 독점 이론을 반박하고 오히려 베끼기의 역설을 옹호하는 여러 사례를 보여줌으로써, 지적 재산권법이 ‘모든’ 창의적 산업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모방이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라며 이를 권장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베끼는’ 길이 산업 전체의 역동성과 창의성을 유지하면서 전체적으로 번성하는데 기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두 줄로 요약하자면,
특정 산업에는 베끼기가 많더라.
놀랍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신이 잘 일어나더라! 라고 할 수 있다.
책은 서론부터 돌직구를 던진다. 상당한 흡입력을 지닌 채 관심을 끈다. 일단 서론을 읽으면서 주어진 몇 개의 질문을 곱씹어보면 책의 나머지를 안 읽고는 못 배기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주방장들은 다른 사람들이 조리법을 베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떻게 새로운 요리를 계속해서 창작할 수 있는 것일까?”
“미식축구 감독들은 경쟁 팀들이 자신의 새로운 전술을 베끼고 연구할 것을 알면서도 왜 계속해서 새로운 전술을 개발하는 것일까?”
“코미디언들은 법에 의존하지 않고 어떻게 베끼는 행위를 규제하며 창작 활동을 촉진할 수 있었을까?”
같은 질문에 대한 상세한 답을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겨 책을 계속 붙잡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두 명의 법대 교수가 쓴 이 책은 지적재산권 전문가답게 다양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하며 검증하여, 여러 분야에서 독특하고 새로운 시각을 도출해내고 있다. 자신들의 주장에 대해서 반대되는 사례를 끊임 없이 질문하고 왜 그럴 수 있는지 WHY 질문을 던지며, 반대 사례를 궁긍적으로 반박하며 본인의 주장을 채택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상당히 단계적으로 지적(知的)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점이 단점이 되기도 한다. 아쉽게도 각 사례에 대해서 지나치게 상세하게 설명을 하거나, 비슷한 주장을 반복하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다소 지나치고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다. 다만, 분명히 이 책은 결코 쉽거나 친절한 책은 아니지만 ‘법’ 자체를 딱딱하게만 여기거나 일반인의 삶에 동떨어진 것이라고만 여겼던 사람이라면 요리, 패션, 스포츠 등의 친숙한 분야에서의 사례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작품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하여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이들을 팝 아티스트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작가로 앤디 워홀을 들 수 있는데, 그는 마릴린 몬로, 마오쩌둥의 초상화부터 캠벨 수프 깡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오브제를 가지고 작품을 표현해왔다. 흥미로운 사실은 – 특히 최근에 들어서 - 이러한 팝 아티스트들은 원작이 되는 작품에 대해서는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본인의 작품에 대해서는 오히려 저작권을 주장하고 법적인 보호를 요구하는 모순적 태도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만약 누군가가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내었다면, 그/그녀 자신도 겸허하게 본인의 작품이 또 다른 누군가의 영감을 위한 밑거름이 될 법도 한데 정작 그런 개방과 관용은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방을 통한 혁신과 창조는 당신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해당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개방이 있다면, 혁신은 그리 먼 곳에 있는 것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무조건적인 CTRL+C, CTRL+V는 물론 곤란하겠지만.
P.S. 좋든 싫든, 맞든 틀리든 ‘창조경제’가 대세다.
가수 싸이가, 아니 정확하게는 싸이의 ‘젠틀맨’ 안무가 창조경제의 모범사례라고 지난 4월 18일 박대통령이 칭찬한 적이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브.아.걸.의 시건방춤 안무가에 저작권료를 지급했기 때문이란다.
과연 싸이는 ‘창조경제적 행위’를 한 것일까? 시건방춤 안무가는 적당하고 합당한 대가를 받은 것일까?
물론, 안무가 입장에서는 지나간 작품에 대한 대접을 받고 덕분에 본인도 다시 한번 조명을 받을 좋은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안무계 나아가 가요계 전체에서 보았을 때 이러한 싸이의 행위가 ‘창조경제의 모범사례’라고 칭찬받아 마땅한 것일까? 본 책에서 '저작권료'가 핵심 주제는 아니지만, 모방과 혁신의 관점에서 저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다.